[네팔 여행]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 #18 - 붑사-수르케, 천근만근 백팩, 컨디션 난조
10월 19일, 붑사-수르케 여정
붑사 에베레스트 롯지의 아침
아침은 보통 거하게 먹는데 오늘은 간단히 오트밀이다. 입맛이 없다.
대신 티베트 빵을 따로 주문해 땅콩 잼과 딸기잼을 발라 간식으로 준비했다.
아침부터 뉴질랜드 그룹은 서둘러 트레킹을 준비한다. 나는 오늘 될 수 있으면 무세마을까지 가려했다.
조사해 본 정보로는 무세가 정감이 가는 동네라나?
오늘 트레킹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고 있던 나는 어쨌든 무세까지 가려 아침 7시에 하이킹을 시작했다.
다른 하이커들이 너무 일찍 서둘러 떠나는 바람에 얼떨결에 나도 일찍 하이킹을 시작한다.
하이킹 컨디션 제로
고산병도 아니고 트레킹에서 오는 피곤함도 아니다. 그냥 한 달에 한번 오는 손님이 찾아왔다.
그래서 몸이 무겁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했으며 하이킹 부츠 때문에 발목 복숭아 뼈 뒷부분이 너무 아팠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은 그런 날이다.
이번에는 부츠 밑창에 양말을 두 개 집어넣어 하이힐처럼 신고 끈도 느슨하게 묶고 출발한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하면 아픔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츠가 스치는 복숭아뼈 뒷부분이 멍이 든 것처럼 조금 색이 변했다.
못 걸을 정도는 아니니 조심해서 걷는다. 어쨌든 오늘 컨디션 말이 아니다
아침 7시 트레킹 시작, 천근만근 백팩
뉴질랜드 그룹은 보이지도 않는다.
시작을 빨리 했으니 저 멀리 앞서가 있을 것이다.
트레킹을 하다 보면 1분 1초가 얼마나 많은 차이를 낼 수 있는지 실감한다.
사진 하나 찍고 돌아서면 앞사람이 저만치 앞서 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뉴질랜드 그룹이 보인다.
하지만 이분들은 배낭을 포터 분들이 메고 가기 때문에 걸음이 빠를 수밖에 없다.
짜우리카르카까지 가는 이 분들의 오늘 일정을 나는 무세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날 이후 그분들을 다신 보지 못했다.
끝이 없이 계속되는 오르막 길, 3패스 3리가 진짜 힘들다고 왜 아무도 블로그에 써놓은 사람이 없지????
계속되는 업힐. 배가 고파 아까 싸온 티베트 빵을 허겁지겁 먹었다.
어떻게 이렇게 업 앤 다운 길만 있는 거지??
평지 같은 것은 없다.
돌계단이 펼쳐지고 어제 비가 왔는지 길이 진흙으로 덮여 있다.
이럴 땐 목까지 오는 부츠가 고맙긴 하다.
길도 조금 잘못 들어 돌아가기도 한다.
당나귀들의 배설물이 젖어 있는 땅에 고여 있으니 냄새가 더욱 지독하다.
한 시간마다 배가 고파 이제 초콜릿을 꺼내 먹는다.
되도록 이런 것 말고 진짜 음식이 먹고 싶은데 당장 당이 떨어질 것 같으면 이렇게 사탕이나 초콜렛을 꺼낸다.
작년 안나푸르나 할 때 괜히 오가닉 에너지바 같은 건강 제품을 가져갔다가 맛없어서 혼났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입맛에 맞는 것으로 가져왔다.
그나저나 쿰부에서 이상한 현상을 겪었다.
진짜 힘들거나 할 땐 잠시 기억 상실이 오는 것 같다.
오늘 너무 힘들어서 그런지 어떻게 걸었는지 생각도 안 나고 지나온 길도 생각이 안 난다.
순간순간 '아! 멋지다' 할 뿐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많이 걸었다 생각하고 어디까지 왔나 물어보니 고작 카리라를 지났단다.
파이야를 지난 줄 알았는데.. 오 마이 갓. 믿고 싶지 않은 현실.
보기에는 가까이 보이고 쉬워 보이는 길인데 걸어보면 한도 끝도 없이 힘들다.
"젖 먹던 힘까지", "진이 다 빠질 때까지"라는 표현이 실감이 나도록 걸었다.
날씨는 덥고 몸은 천근만근.
진정 이 무거운 10kg 백팩에 필요한 것만 있는 것인가??
가방에서 정말 줄일 것이 없다.
작년에 안나푸르나에서 괜히 초반에 가방 줄인다고,
그리고 초반에 날씨가 너무 덥다고 플리스 재킷 하나를 도네이션 했는데
나중에 산에 올라가 내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엄청 후회했다.
산속에서 얼마나 추운지 잘 몰랐다.
그때는 핫팩도 몇 개 없었을뿐더러 침낭도 지금처럼 좋은 침낭이 아니었다.
그래서 밤이 오는 게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콧물을 항상 달고 살아 코가 심하게 헐었었다.
헐은 코 근처 살이 트고 따가워 립밤을 발라야 했을 정도다.
이번에는 정말 버릴 것 하나 없이 필요한 것만 잘 싸가지고 왔다. 그런데 굳이 내가 고추장의 양을 좀 덜어내 버리는 실수를 또 한다.
지금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양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그 조금 되는 양이라도 버려서 가방의 무게를 줄여보자 하였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다 생각해서 가지고 온 이유가 있는데.
고쿄 마을에서 수제비 툭바를 먹을 때 트레킹 3일 만에 조금 덜어내어 버린 고추장을 간절히 바랬다.
파이야의 어느 롯지에서 점심
내가 수르케 갈 때 점심을 먹었던 곳이 파이야 마을이라는 것도 잘 몰랐다.
그만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쳐 있었다.
너무 지친 나머지 입맛이 없었지만 먹지 않으면 걸을 수 없기에 오믈렛이라도 시켜 먹는다.
몇 번 이런 경험을 하고 배고픈 상태로 트레킹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배웠다.
그래서 항상 먹을 간식을 따로 주머니 가방에 넣어 다닌다.
점심 먹은 롯지의 따뜻했던 햇살을 기억한다.
그냥 낮잠이나 자고 싶었던 심정이었다.
쿰부 3패스 3리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이 마을을 지나며 한 롯지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내가 먹었던 야채 라라 누들 중에 가장 맛있게 먹었던 누들이었다.
내려올때는 파이야 마을이 너무 아름답다 생각했는데 수르케로 올라갈 때는 어찌 이 마을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생각도 안나는지 모르겠다.
올라갈 때 등을 지고 올라간 자리를 하산할 때 다시 보게 돼서 그런가?
하산 시 본 파이야는 마치 내가 그곳을 처음 지나친 것 마냥 생소하게 느껴졌다.
수르케 까지 끝이없이 이어지는 내리막 길, 새 하이킹 부츠 $300불 주고 샀는데.....
역시 발이 편해야 하이킹이 편한데 오늘은 진짜 컨디션이 별로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가는 길만큼 힘이 든다. 올라갈 때는 약했던 발목 통증이 내려갈 때 슬그머니 올라온다.
드디어 수르케 마을이 저 아래쪽에 보였을 때 저곳이 오늘 내가 묵을 마을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수르케에서 무세까지는 대략 30분 정도의 거리지만 더 이상 1분의 하이킹도 할 수 없다.
30분 또는 1시간의 짧은 하이킹이 나에게는 10시간처럼 느껴졌다.
수르케에 도착한 시간은 3시 30분. 하루 하이킹 끝내기 딱 좋은 시간이다.
그런데 지리부터 샤워하지 않은 미국인이 이 롯지에 묵는다.
뜨거운 샤워 물이라도 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수르케 탐세쿠르 롯지Thamserku lodge
이 롯지에 묵은 이유는 무료 충전 때문이였다.
이 롯지 언니의 엄마도 옆에서 롯지를 하신다. 그런데 그곳은 사람이 꽉 찼단다.
아무래도 엄마가 요리를 더 잘하시지 않을까? 그렇지만 이 언니도 요리를 맛있게 한다
연세 100세 가까이 되신 할머니가 계시는데 내가 손 시려하니 손을 잡고 계속 문질러 주시거나 담요를 덮어 따뜻하게 감싸주신다.
언니가 없을 때 할머니가 마살라 티 한잔을 주셨는데 언니가 와서 보더니 바로 영수증에 적는다.
쿰부의 롯지들은 안나푸르나의 롯지들 보다 조금은 더 상업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방: 나는 음식만 맛있으면 만족하는 스타일이라 방은 무난하다.
음식: 달밧도 맛있고 찐 감자와 주신 직접 만든 칠리소스도 너무 맛있었다.
충전: 무료
샤워: Bucket샤워. 뜨거운 물을 짜게 주길래 조금 더 달라했다.. 춥긴 했지만 해지기 전이라 샤워가 가능했다.
포터겸 가이드 팸버와 싱글트레커 코라,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외롭지 않았던 저녁
코라와 팸버라는 하이커와 가이드를 만났다. 이들은 하이킹을 마치고 하산 중이었다.
이들과 나, 샤워가 절실히 필요한 미국인 하이커가 롯지의 손님 전부이다.
내 옆방에 자리 잡은 미국인, 3패스 3리 끝날 때까지 샤워를 하지 않을 모양이다.
나는 저녁으로 달밧을 시켜놨다. 오늘은 정말 너무 배가 고파 두세 번은 더 먹을 기세다.
칠리소스와 함께 먹으니 너무 맛있다. 내가 가져간 깻잎도 열어 함께 먹으니 하루의 고단이 다 풀리는 것 같다.
샤워도 하고 저녁도 이렇게 진수성찬에 더 이상 뭘 더 바라겠는가?
네팔에 오면 , 특히 산을 타면 이렇게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고 감사하는 마음도 풍부해진다.
골프레슨
코라는 오스트리아에서 골프를 가르친다. 그래서 저녁에 우리에게 골프 자세를 가르쳐 준다.
정말 즐거운 저녁시간이 되었다. 하루 종일 너무 피곤했는데 이렇게 한방에 피로가 풀리다니.
이래서 산을 탄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또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
눈이 충혈이 되었는데 코라가 눈에 넣는 물약까지 주었다.
코라와 팸버는 정말 마음이 넓은 친구들 같다. 배울 점이 많다.
마을 | 높이 | 예상 트레킹 시간 |
Bupsa | 2360 | 2시간 30분 |
Kari La | 2860 | |
Paiya | 2730 | 1시간 15분 |
Surke | 2290 | 2시간 3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