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고라파니-푼힐-구르정, 깜깜한 새벽 산행
간담이 서늘한 깜깜한 아침. 푼힐 전망대 새벽 산행, 푼힐 일출
잘 때와 똑같이 입고 그대로 일어나 푼힐로 올라가는 아침. 별이 보이는 이 캄캄한 아침. 이럴 땐 가이드가 있어서 깨워줘서 같이 올라갔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안나푸르나 라운딩 사상 처음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 내가 롯지에서 제일 먼저 일어났나?
별이 보이고 달이 보이고 캄캄한 어둠을 가르며 손전등 하나 쥐고 물통 들고 이 추운 아침 푼힐로 향해요. 어제 율리아와 체크했던 푼힐 올라가는 입구 쪽으로 올라가요. 귀신이 나올 것만 같이 어두운데 그것도 산을 혼자 올라가려니 너무 무서웠어요. 간도 큰 나.
푼힐 전망대 매표소
이렇게 이른 아침에, 입장료를 떼먹고 가는 사람이 있을까? 매표소에는 벌써 직원이 입장료를 받고 있었어요. 매표소가 어두워서 안 보였었는데 갑자기 사람의 인기척이 들려 얼마나 놀랐는지. 입장료를 내고 올라가는 길, 이제는 안전구역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무서웠어요.. 손전등을 앞뒤로 비춰보며 혹시 뒤에서 사람이 오나 확인해요. 푼힐 중간 정도 다다랐을 때 산 아래를 보니 플래시 빛들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어요. 내가 너무 일찍 출발했나 보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푼힐 트레킹, 푼힐 전망대
올라가니 제가 두 번째 또는 세 번째로 도착한 사람이에요. 이제는 돌계단에 수없이 많은 헤드랜턴들이 올라오고 있어요. 아직 해가 올라오려면 멀었는데. 전망대에 올라가 해뜨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전망대에 올라와 몸을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어요. 발가락, 손가락이 너무 시렸어요. 푼힐의 새벽이 이렇게 춥고 새찬 바람이었다니, 차라리 비좁은 전망대에 사람들이랑 함께 체온을 유지하고 있는 편이 낫겠다.
발밑에 강아지 한 마리
언제 와서 제 발밑에 앉았는지 안 그래도 발 디딜 틈도 없구먼 강아지 한 마리가 비좁은 전망대 바닥에 누워있어요. 귀여운 강아지 같으니라고. 한 30분도 더 넘게 해가 뜨기를 기다린 것 같아요.
푼힐 일출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
마차푸차레 (Machhapuchhre, 6957m)를 비롯한 안나푸르나의 고산 산군들이 떠오르는 햇살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해요. 어느새 푼힐 전망대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해가 뜨기를 흥분 속에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 추위에 이 멋진, 평생에 한번 볼까 하는 (푼힐에 자주 가는 사람 빼고) 일출의 모습을 사진기에, 마음속에, 머릿속에 담기 위한 그들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네요.
아침식사와 창밖 풍경
이 롯지 떠나기 싫어요. 어제 저녁 먹을 때 가이드와 포터분들에게만 제공되는 특별식, 치킨으로 만든 강정같은 것이 있었는데 네팔사람들과 거의 비슷하게 생긴 저를 귀엽게(?!!) 봐주셔서 가이드 분들이 나에게 특별히 치킨강정을 나눠주셨어요. 롯지 주인아줌마는 못마땅한 얼굴. ㅋㅋ 아침은 오랜만에 세트메뉴. 블랙티 홍차와 토스트, 땅콩잼(별도 주문)과 딸기잼, 계란후라이 두 개, 해쉬브라운. 아침을 먹는데 갑자기 헬리콥터가 날아가는 것이 보여요.. 트레킹 하는 모든 사람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일정
일정 미정. ABC를 하고 싶은지 의문. 가기도 싫은데 가봤다는 의미로 다시 4000미터를 올라가야 하나? 마음에도 없는데? 걷다 보면 생각이 분명 해 지겠지. 벌써 20일째 산행. 지칠 만큼 지쳤다. 다른 것은 다 좋은데 다시 4000미터로 올라가면 겪게 될 추위가 무서울 것 같았어요..
데우랄리 전망대
아침 서리에 나뭇잎들이 하얗지만 곧 해가 뜨니 서리가 녹아요. 고라파니 마을을 떠나 쭉 오르막 산길을 오르다 보면 꼭대기 평지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보는 경치가 멋져요. 이곳에서는 우리가 아침에 올랐던 푼힐 전망대도 보이고 어제 우리가 하루 종일 올라왔던 고라파니 계단길도 내려다 보여요. 다울라기리 산이 정면에 보이는 이 전망대에서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사실 아침 푼힐에서 본 풍경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타다파니 가는 길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도 지나고 숲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작은 폭포도 보고 이렇게 무지개도 봐요.. 사실 제가 하이킹 일정을 계획하지 못한 이유는 푼힐에서 ABC 가는 길, 간드룩이 중심에 있는데 이곳을 지나서 갈지 아니면 타다파니에서 쭉 일직선으로 걸어갈지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생각 같아서는 모든 길을 다 걸어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전망 좋은 풍경 타다파니
풍경이 정말 말로 표현 못하게 아름다워요. 타다파니에 도착하기까지는 정말 힘들었지만 롯지 벤치에 앉아 먹는 볶음 국수 차우면(기름졌지만 양은 풍부)과 핫 초콜릿은 햇살 가득한 나른한 오후를 만끽하기 충분했어요. 하이킹을 끝내자니 너무 이른 시간이고, 가자니 이곳 풍경이 너무 좋아 망설여졌어요.. 하지만 마음속에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ABC를 해야겠지 않겠나 싶어 더욱 ABC와의 거리를 좁히고 싶었나 봐요.. 이곳을 떠나 추일레로 떠납니다.
Chuile추일레 Mountain Discovery 롯지
추일레, 누군가 전망이 좋다 하여 내려갔더니 전망이 좋은 뭐가 좋은가, 당연히 더 높이 있던 타다파니의 전망이 훨씬 좋으니 그곳에서 자야 했어요;. 게다가 Mountain Discovery 롯지의 사람들이 너무 불친절하여 짐을 풀려다 말고 다시 싸서 돌아보지도 않고 걸어 내려갔어요.. 진짜 이상하게 한기가 느껴지던 사람들. 소름 끼쳤던 이상한 사람들.
구르정 가는 길, 불안한 감정
구르정 까지가 얼마나 걸리는지, 롯지가 어디 즈음에 있는지, 한 시간 반 이내로 해가 지려는 이 시점 다시 하산을 하고 있는 나 정말 불안했어요.. 항상 일정표를 가지고, 이동하는 다음 마을까지 얼마나 걸리고 몇 개의 롯지가 있는지 공부 해 놓은 뒤, 앞 뒤로 하이커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걷는데 오늘 큰 실수를 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다행히 무사히 도착한 구르정에 롯지가 하나 있었고 손님은 저 혼자였어요. 느낌상 이 롯지 사람들은 친절할 것 같았어요.
구르정 롯지
100루피에 싱글룸, (정말 뜨거운) 핫 샤워를 마치고 저녁을 신라면과 달걀 하나 풀어주세요!로 주문하고 빨래를 하고 널고 있는데 푼힐 전망대에서 봤던 영국 남자 하나와 불가리아 여자 한 명, 캘리포니아에서 온 미국계 동양인 여자애 세명이 걸어와요. 제가 심심하기도 하고, 혼자 롯지에 묵기 무섭기도 하여 그들에게 여기 롯지 좋다고 여기 숙박하라고 하니, 이제 해도 조금 있으면 지겠다 제 말을 듣네요. 만약 이들을 좀 더 일찍 만났다면 오늘 촘롱 까지 함께 갔을 것 같아요.. 촘롬에는 숙박시설이 더 많을 테니까요. 저는 저녁을 기다리며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는데 그 영국 남자가 오더니 제가 모닥불을 핀 것을 보고 감탄하는 눈치예요. 감탄까지야. 좀 쉬고 나중에 제가 피운 모닥불에 친구들과 조인하러 오겠다네요.
늘어나는 롯지식구
나, 세명의 하이 커들 말고 나중에 네 명의 폴란드 친구들이 롯지에 합류했어요. 이 늦은 깜깜한 저녁에 구르정에 도착하다니. 대단하다. 모닥불 앞에 빨래를 들이밀고 말리며 신라면을 먹었어요. 한 5불 정도 하는 것 같아요. 정말 비싼 거죠. 자기소개를 하는데 알고 보니 불가리아 친구는 터키에서 왔고, 영국 남자라고 생각한 애는 아일랜드에서 왔어요. ^^. 밤늦게까지 이야기 꽃을 피운 우리. 전 오늘 불안한 감정으로 하이킹을 했고 화난 감정으로 Mountain Discovery 로지를 떠났는데 이 친구들을 만나서 즐거운 맘으로 하루를 마쳐요.. 이들은 모두 ABC로 가는 길. 내일 일정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취침에 들었어요.
마을 | 고도 | 하이킹 예상시간 | comments |
Ghorepani | 2860 | 총 7~8시간이지만 나는 타다파니에서 구르정까지 가는 바람에 더 걸린것 같다. | 타다파니:안나푸르나 사우스, 히운출리, 강가푸르나, 마차푸차레 조망 |
Poonhill | 3193 | 아침 기상, 4:30 하이킹시작. 한시간 조금 안되게 걸려 푼힐 도착 | |
Deurali | 2983 | 난 푼힐보다 다우랄리가는 풍경이 더 좋았다. 차라리 푼힐 안가고 이구간에서 좀더 시간을 보낼것을 그랬다. | |
Benthanti | |||
Tadapani | 2680 | 추일레 Mountain Discovery 롯지 정말 어처구니 없게 불친절한 사람들. 그래서 구르정으로 옮김. | |
Chuile | 2245 | ||
Gurjung | 2050 | 구르정롯지에서 핫샤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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